20-11-14 14:51

망한 사람의 광야

조근M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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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을 한다고 자랑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간만 나면 자기말을 들어 줄 사람만 만나면 골방을 한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골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질책하고 정죄했습니다.

교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였습니다.

교만할대로 교만해져서 교회를 나가는 일이 금방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들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죄에 빠져서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집사도 한사람이 있었는데 골방을 한다고 요란하게 자랑을 했습니다.

배움도 있고해서 저만이 똑똑한것처럼 항상 교인들을 만나면 가르치는 자세를 취했던 집사였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교만한 욕구가 교회에서 충족이 되지를 않았는지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보험을 한다고 다니고 그러더니 그사람도 좋지 않은 소문을 내며 이혼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있다 합니다.


또 다른 집사도 있었습니다.

그도 골방을 한다고 하면서 항상 영적인 생활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교인들앞에서 항상 선생의 자리에 올라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연약함이나 잘못을 시인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것이 너무도 심해서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정체는

말할수 없는 심한 열등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도 더이상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교회에 머물러 있을수가 없어서 교회를 나갔습니다.


마치 이혼을 한 사람이 자기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헤어진 배우자를 심하게 욕을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허물과 죄를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간 자기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자기가 떠나간 교회를 비난하게 마련입니다.


교회는 허물이 많고 연약해도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교회를 맡은 목사는 자기가 맡은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허물이 많아도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교회안의 성도들은 마치 병아리같이 연약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주님이 기르시는 것입니다  


교회도 주님의 아픔이 아니되는 교회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

목사도 교회안의 일군들도 주님의 아픔이 되지 않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들이 악인이 아니라 스스로 연약한 것을 알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믿음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주님의 아픔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도 다 주님이 기르시며 먹이고 안고 주님의 아픔의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그와같은 교회를 비난하고 목사를 욕하고 성도들을 비방하고 미워하는 것은 주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대치상태에 들어가는 것이요 주님의 원수의 자리를 스스로 취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형제를 비방하면 안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더군다나 주님이 세우시고 쓰시는 종을 비방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14:4)


주님의 몸된 교회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짐승같은 이들에게나 있고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물론 주님을 따르는 진실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배교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앞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들의 골방은 무엇인가?

골방을 했는데 왜 그렇게 불행해졌나?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일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12:6)


그들은 골방은 그 여자의 골방이 아니었습니다.

그여자의 광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골방은 광야가 아니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망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장만한 장소를 찾아 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양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골방은 교만으로 자기를 살찌우고 배부르게한

골방이었습니다.


골방은 자아를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골방은 자아를 죽이고 무릎 꿇리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야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을 위해서 하나님은 외로운 여정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광야요 거기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이삭에게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혼자 된 것이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광야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집에서 살수 없는 처지가 되어 쫓겨났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가 되어서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갔을 때에 부모의 품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보디발의 집의 종노릇하는 생활이요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까지 가는 고통을 당한 것이

그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소 곧 광야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들판에서 아비의 양을 지킬 때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예비하신 장소이었습니다

사무엘과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주의 제자들도 삼년반동안 곧 일천이백육십일을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소와 시간을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아니라 자기들아 장만한 곳에서

하나님이 양육하시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가 지식으로 높아지고 교만해지는 장소로서의 골방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먼저 그 여자에게 속한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광야를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의 성도들에게만 주님이 예비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망가야합니다.

도망가는 것은 자기가 연약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강함과 교만함으로 자기의 의지와 결단으로 골방을 가지는 것은 앞의 사람들과 같이 교만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양육을 받는 것도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일천이백육십일의 절대시간이 필요한 것도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와같은 광야가 있는 성도는 절대로 교만해질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연약함 것외에는 자랑할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시간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는 삼년반동안 자기를 자랑했습니까?

주님앞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방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절대 겸손가운데 들어갑니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자기의 악함밖에는 없습니다.


일전에 달리기를 하면서 공원을 한바퀴 돌고 오는데 앞에 키가 작은 여자 한사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여자를 지나치는데 키가 작아도 너무나 작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나기를 이사람은 왜 이렇게 키가 작을까라고 했는데 마음에서 답이 올라왔습니다.


"응 남들이 클 때에 안커서 그런거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은 가롯유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때에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고 자기를 사랑해주신

선생님을 은 삼십에 팔은 것입니다.

그돈을 한푼도 쓰지 못할 것을 위해서 자기를 삼년반동안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사랑해주신

주님을 팔은 것입니다.


왜그랬습니까?

남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말씀으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 때에도 유다는 교만만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다 하나같이 갈릴리 사람들이고 자기만 유대사람이라는 것도 교만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나 자기는 배움이 있어 교만했습니다.

제자들은 일도 못하지만 자기는 회계를 맡아서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교만해졌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앞에 낮아지는 길을 가고 있을 때에 유다는 육신으로 높아지는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육신으로 일하고 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교만함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가

다 이와같은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일천이백육십일의 양육을 받고 있을 때에 유다는

양육받지 못했고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다른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아니라 자기가 장만한 장소입니다.

이것이 양육받는 광야가 아니라 양육을 받지 못하는 골방입니다. 

이것이 도망가는 교회가 아니라 자기 육신으로 마귀와 부딪히고 세상에서 싸워보려는 오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시작이 교만이면 그의 끝도 교만입니다.


우리는 유다의 길을 가지 말고 다른 제자들과 같이 겸손함으로 종용히 주의 말씀을 배워 순종하고

양육을 받는 광야로 도망가는 은혜를 받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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